어떤 여름밤 그는 경계를 넘었다. 꿈이었는지, 꿈이 아니었는지. 작금의 자신이 조조와 함께 병사 팔천을 거느리고 출정하던 어린 청년인지 장성한 노장인지. 전부 뒤섞여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야 할 방향만큼은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여신이 미소지었다. 그러니 꿈이었는지, 환상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그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내가 아는 만큼 내 세계가 넓어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참 좋아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이 영화를 50%도 즐기지 못한 것 같다...곳곳에서 명화 오마주를 보여 주었다고 하는데 정말 명화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좀 슬픈 일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을 120%도 아니고 20%밖에 끌어내지 못하는 감상은.....
"팔자 좋게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와시즈 마작으로부터 10년 하고도 49일. 아카기 시게루, 29살. 웬 새하얀 양복을 빼입은 기분 나쁜 사내에게 멱살을 잡히다. 사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아카기 정도 되는 사내가 도박판을 전전하며 원한 하나 사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다만 사내가 칼이나 총을 빼들고 아카기의 죽음을 바라는 대신 엉엉 울고 ...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며 서원직은 눈을 비볐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신뿐이어야 할 탕비실에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원치 않던 불청객이. "오셨습니까?" 문 안의 불청객은 심지어 커피를 손수 타 놓은 상태였다. 믹스커피였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성의 표시를 하려고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장군이...
-아비정전, 1990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세 개째 보고 있다. 화양연화, 중경삼림, 그리고 아비정전.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며, 그 때문인지 좀 날것의 느낌이 팍팍 풍긴다. 어떤 부분에서 날것이라고 느꼈냐면, 스토리가 정돈되어 있지 않고 플롯이 빈약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허무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슷한 느...
-가스등, 1944 '가스등'은 '가스라이팅' 용어의 어원이 된 영화답게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고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영화는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으로 시작해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으로 끝난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는 아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여자는 같은 여자인데, 여자의 젊은 연인은 각각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
"선생. 죽었습니까?" 죽은 사람이 대꾸를 어떻게 하냐고, 머리를 설마 정말로 책사들에게 외주라도 주고 다니는 것이냐고 마땅히 돌아왔어야 할 빈정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은 일이다. ...서원직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까지 찾아온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서 선생. 계십니까?" 돌아오는 답은 없...
"비가 오네." 원직은 창 바깥으로 손을 내밀었다. 빗소리가 거셌다. 쉬이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낡은 탕비실 안이 어쩐지 눅눅하다 싶더니. 손이 잔뜩 젖어 이내 축축해졌다. 그 책사는 몸을 물리며 손을 털었다. 먼지 위로 점점이 물방울이 흩날렸다. 손을 닦을 휴지를 찾아보다, 이내 이 탕비실에 물품이 채워진 것도 벌써 이 주일이 다 되었다는 사실에 그...
-아키라, 1988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아서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면서 봤다... 몇 가지 의문스러운... 솔직히 말하자면 꼴받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그 부분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아니...전쟁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전후 세대니까...) 그 수단으로 어린아이를 사용하고 낭만화할 것은 또 뭔가? 실험체 세 명을 말하는 것이 맞다. 작...
밤이 되면 지원이 수민에게로 온다. 좁은 방, 쓰레기가 넘실거린다. 꽉 들어차 맞물린 쓰레기들이 제 자리를 잃은 퍼즐처럼 영 보기 싫다. 수민은 침대 위에서 그 모든 것을 모른 척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밤이 되면 쓰레기들이 속삭인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수민이 잡을 수 있었으나 잡지 못한 모든 기회들이다. 벗어날 수 있었으나 벗어나지 못했던 모든 족쇄인...
-파묘, 240222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한국의 미신과 무속학을 사랑하는 편이다. 전공과 여러모로 관련이 깊기도 하고, 단순한 오컬트로서도 사랑한다. 일상에 깊게 배어들어 있다는 점까지도 좋아한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굵은 소금을 뿌린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 밖에서 물건을 들여올 때에도 소금을 뿌린다. 보름날에 부럼을 깨고,...
-타짜, 2006 스터디에서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던 영화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기도 하고...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영화가 너무 좋다. 타짜가 딱 그런 영화였다. 유명한 만화가 원작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원작도 읽어 보았는데 긴 호흡의 이야기에는 만화가, 짧고 압축된 호흡의 이야기에는 영화가 어울리는 것 같다.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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